<인터뷰>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

박창욱 입력 2011. 10. 2. 08:02 수정 2011. 10. 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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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긴 여정…여전히 지휘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오케스트라는 엘리트만을 위해 존재해선 안돼"

(베를린=연합뉴스) 박창욱 특파원 = "우리는 음악으로의 긴 여행을 하고 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면서…."

베를린 시내 중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거리에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층 수석 상임지위자 사무실은 작고 소박했다.

반소매의 평상복으로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은 사이먼 래틀 경에게 "이 사무실에서 평소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내 작은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낡은 소파, 피아노, 옷장 등이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거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카라얀 시대부터 쓰던 방"이라며 "이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무대로 나간다"며 무대로 통하는 문을 열어 보였다.

래틀 경은 1955년 영국 리버풀 태생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인 1980년 무명의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아 18년간 세계적 악단으로 키워내 주목받았다.

1999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의 투표에 의해 수석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선출돼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이어 2002년부터 이 악단을 이끌고 있다.

2009년 임기가 2018년으로 연장되면서 베를린 필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에 더해 `21세기 카라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오는 11월 15일과 16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는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 관객의 반응은 매우 훌륭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바쁜 일정으로 2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인터뷰였지만, "도착지가 없기를 바라는 긴 여정"이라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과 심도 있는 견해를 들려줬다.

다음은 래틀 경과의 일문일답.

--2005년 한국 공연 이후 3년마다 꾸준히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간단하다. 한국 공연은 매번 느끼지만, 매우 훌륭하고 멋지다. 우리가 한국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즉시 관객들의 반응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집중한다. 우리는 이런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꼭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러와 부르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하기로 돼 있다. 어떤 곡들이며, 이 곡을 연주하기로 한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가 말러와 부르크너의 르네상스 시기였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말러와 부르크너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성격적으로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특이한 것은 둘 다 위대한 9번 교향곡을 썼다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베토벤 이후 가장 훌륭한 9번 교향곡이다. 이들 곡을 뛰어넘을 수 있는 9번 교향곡은 없다고 할 정도로 신화적이다.

후기 낭만파 시대의 대표적인 교향곡들을 연주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한국 공연은 두 곡이 매우 아름다운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는 것을 느낄 기회가 될 것이다.

--임기가 연장된 2009년을 기점으로 래틀의 베를린 필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후반은 전반에 비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오케스트라는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전진한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방문'하면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단련하고 또 단련하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바흐 연주에서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바흐의 새로운 곡들을 많이 연주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대통령 선거 연설처럼 금방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래틀 경을 `21세기 카라얀'이라고도 하고, 앞으로 카라얀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큰 소리로 웃으면서) 사람들이 그런 평가를 하는가. 카라얀이 이루어놓은 것은 아무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거대한 강물이고 나는 그 강물이 흐르지 못하게 댐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처음 카라얀을 만났을 때 정확히 그곳(기자의 자리를 가리키며)에 앉아 있었고 카라얀이 지금의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당시에 카라얀은 그의 전임자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얘기했다. 그는 지금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하다. 나는 전임자들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2차세계 대전 이전의 푸르트벵글러 자료를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카라얀 것을 쓰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일체화돼 있다.

--전임자들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가.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음악을 다르게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또한, 그런 식으로는 성공하지도 못한다. 반대로 우리가 카라얀 시대의 모든 것을 따라 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음악에 대해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래틀의 베를린 필은 이전에 비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우린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카라얀 시대의 베를린 필은 정말로 독일의 오케스트라였지만, 지금 단원들은 25개 국적을 갖고 있고 점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단원 개개인이 각자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베를린 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곳이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다. 단원들은 나로부터 배우고 나는 그들로부터 배운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지금 지휘하는 방식이 엄청나게 바뀐 것은 그 때문이다.

--베를린 필의 강점은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필은 가장 밀도 있는 오케스트라다. 치열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로서 편하게 즐기는 삶을 살려면 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은 피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재능있는 연주자들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베를린 필이 가진 그러한 치열함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로를 지키면서 긴 여행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절대 오지 않기를 바란다.

--25개국으로부터 온 연주자들을 이끄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것은 어려움이 많지만, 국적이 다른 것과는 관련이 없다.

어려움이 있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 모두 한 방에 있다는 것이다. 일반 오케스트라라면 단지 한명 두명 정도이겠지만, 베를린 필은 연주자들 대부분이 말론 브란도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베를린 필의 독특한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트럼펫만 보더라도 제1 연주자는 헝가리인이고 제2 연주자는 프랑스인인데 이들은 통역 없이 독일어로 된 곡들을 함께 읽고 해석한다.

전 세계의 말론 브란도들이 이곳에 오는 순간 베를린 필 단원이 된다. 그들은 변화하고 연주도 바뀐다. 나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2002년 취임 이후 베를린필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이 내가 취임한 후 생긴 베를린 필의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디바(diva) 엘리트들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을 경험하게 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하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베를린필은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 정신병원, 교도소 등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베를린 필은 우리가 특별한 것을 하기로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하다.

--이미 클래식 음악의 정상에 서 있다.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더 있는가.

▲나는 여전히 지휘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여행 목적지가 있지만,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전문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 언제나 추구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도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pc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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