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라질 뻔했던 서울 연희동의 작은 '소나무숲'이 한 시민의 땀과 집념으로 푸름을 지켜가고 있다.
지난 5일 문을 연 연희동 연희문화창작촌(옛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터)은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7242㎡ 규모의 야트막한 언덕엔 큰 소나무 70여그루가 자리해 있다. 감나무·
뽕나무·아카시아까지 도심 속의 고즈넉한 숲을 채우는 수종만 40개가 넘는다.
5년 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이 숲의 지킴이는 주부 정진씨(53·사진). 정씨는 2004년 6월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이전한 뒤 비워져 있던 이 터를 민간에 매각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을 전해들었다. 정씨의 집과 숲은 담 하나를 사이로 맞붙어 있다. 정씨는 서울시와
서대문구청,
국립수목원, 환경시민단체를 찾아갔다. 서울시에는 "아름다운 숲을 지켜달라"는 장문의 편지도 보냈다. 편지에는 생태보전시민모임에 직접 부탁해 작성한 13쪽의 숲생태 실사 보고서도 첨부했다.
일주일 뒤 서울시 재무과는 정씨에게 민간매각 방침을 철회하고 숲을 보존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매각하더라도 관공서에 넘겨 숲 생태가 보존되도록 하겠다"는 답이었다. 4년이 흐른 지난해, 서울시는 더 울창해진 숲속에 전원형 문학창작촌을 만들기로 했다. 정씨의 '작은 승리'였다.
숲 지킴이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월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자 숲 생태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추진됐고 나무들의 자연스러운 생장을 방해하는 밀식도 보였다. 정씨는 매일 공사 중인 숲을 드나들며 조목조목 시정을 요구했다. "산책로를 줄여 나무들의 정상적인 생장을 도와주세요" "그쪽 그늘에 옮겨심으면 나무가 뿌리까지 햇빛을 받지 못해요" "밤 늦게까지 조명등이 있으면 숲 친구들이 쉴 수 없습니다."
정씨가 쏟아낸 제안을 따라 숲에는 언덕을 오르는 주산책로만 남았다. 소나무는 한 그루도 베어지지 않았다. 수시로 숲을 찾아오는
오색딱따구리와 박새가 물을 마실 수 있는 돌절구도 마련됐다.
"숲은 공원이 아니에요." 정씨는 "당장 보기 좋은 것을 위해 꽃을 심고, 사람을 위해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면서 "우리보다도 먼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숲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모두에게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 유정인기자 jeongin@kyunghyang.com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