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을 주저앉혀라" 잠복했던 불만 터졌다

2008. 3. 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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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공천을 마무리 짓고 선거 체제로 들어가려던 한나라당에서 '형님 공천'이 갑자기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도운 당내 5선 의원 중 유독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부의장만 공천을 받은 것을 놓고 공개적인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소장파'의 대표 구실을 해 온 남경필 의원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원칙과 기준이 상실된 공천 후유증으로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흔들리고 있다. 민심을 다시 잡기 위해선 이상득 부의장의 결단이 절실하다"며 불출마를 촉구했다. 여기에 김용갑 의원도 이날 성명서를 내 "다른 다선 의원들은 다 공천 줘도 (대통령의) 형만은 배제하는 것이 정도"라고 가세했다.

■ '형님 공천' 왜 문제되나=

이 부의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공천 후유증으로 총선 판세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형님 공천'이 부적절한 공천의 대표 사례로서 계속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의원은 "철새 공천·전과자 공천 등 원칙 없는 공천이 이 부의장 때문은 아니다"라면서도 "박희태·김덕룡 등 다른 5선 의원들은 줄줄이 떨어지는데 대통령의 친형만 공천을 받은 것은 '국민정서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부의장이 김현철, 권노갑 등 과거 정권의 권력 실세들이 빚어낸 '권력 농단'을 재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청와대의 핵심 자리는 이 부의장 쪽 인물들이 모두 장악했고, 주요 장차관 자리도 이 부의장에 줄을 댄 사람들이 차지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부의장이 국회 본회의 도중 장관 희망자들의 이력서를 훑어보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장다사로 정무1비서관 등이 이 부의장의 뜻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꼽힌다. 공천 과정에서도 "공천을 받으려면 이상득 부의장에게 먼저 선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가 파다했고, 실제로 이방호 사무총장을 통해 공천 심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필 의원 등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초반의 절대적 우세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닥쳐오는 데는 이런 '형님 문제'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남 의원의 '거사'에는 이런 수도권 의원들의 일반 정서가 담겨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 '실세 형님'에 숨어 있는 권력투쟁=

하지만 '이상득 퇴진론'은 명분 문제 외에도 권력투쟁의 성격도 띠고 있어 문제가 복잡하다. 이면엔 당권을 장악하려는 '이재오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이상득 부의장·강재섭 대표 등의 대립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한때 이상득 퇴진론이 나왔다가 사라진 데는 이재오 의원이 당내 최고 실세인 이 부의장을 밀어내려고 '쿠데타'를 벌였다가 힘에 밀려 실패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았다.

남 의원의 문제 제기가 확산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남 의원은 이날 이 부의장 불출마를 주장하기에 앞서 박형준·원희룡·정병국 의원 등 소장파의 산실이었던 수요모임 의원들과 의견을 나눴지만, 모두 남 의원을 말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천이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나. 때가 너무 늦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이 부의장 또한 전날 남 의원과 만났을 때 퇴진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강재섭 대표도 이날 남 의원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당은 노·장·청년층이 잘 조화돼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을 몰아내는 게 개혁이 아니다"라며 이 부의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결국 '형님 공천' 문제가 폭발할지 여부는 총선 민심에 달려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빠르게 떨어질 경우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이 남 의원의 문제 제기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일회성 비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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