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고? 유명인과 연예인은 당해도 싸다

유상우 입력 2010. 11. 14. 08:02 수정 2010. 11. 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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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가 18일 국내 개봉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미국에서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영화다. 소재가 된 마크 주커버그라는 인물 자체의 화제성 덕이었다.

전 세계 207개국에 걸쳐 약 5억50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의 창업자, 25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 가치, 26세의 나이에 약 69억 달러(한화 약 8조원)의 재산을 보유하게 된 역사상 최연소 억만장자…, 이 정도 걸출한 인물의 실상을 파헤친다는 콘셉트였기에 오히려 주목받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미국 언론은 일제히 호평을 쏟아냈다. 로튼토마토 집계에 따르면 영어권 250명의 평론가 중 243명(97%)이 호평했다. 어워즈데일리 운영자 사샤 스톤은 '소셜 네트워크'를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견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소셜 네트워크'를 '왕의 연설', '127시간'과 함께 2011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이 같은 비평계의 열기와 주커버그 본인의 화제성에 힘입어 '소셜 네트워크'는 흥행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딱히 상업적 소재와 친근한 접근방식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개봉 첫 주 북미지역에서 2244만5653달러를 벌어들여 주간 흥행 1위를 차지했다. 12일까지 북미지역에서 8561만6683달러, 해외수익을 합쳐 1억5195만9076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제작비 5000만 달러짜리 드라마치곤 대단한 성과다. 게다가 아카데미 시즌에 발맞춰 개봉관 확대에 들어가면 북미지역 1억 달러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쥔 올해의 '잇' 영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 별도로 '소셜 네트워크'는 개봉과 함께 지속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과연 영화 속 주커버그가 실제 주커버그와 공통점이 있느냐는 것이다. 일단 영화에 등장하는 주커버그의 전 여자친구 에리카 올브라이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페이스북 창업의 심리적 요인을 설정하기 위해 넣은 장치일 뿐이며, 실제 주커버그는 프리실라 챈이라는 중국계 여성과 페이스북 창업시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선 프리실라 챈의 존재 자체가 삭제돼있다.

영화 속 주커버그가 상류층 집안 출신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는 설정도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주커버그는 어머니가 정신과의사, 아버지가 치과의사로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또 영화 속에선 주커버그가 컴퓨터밖에 모르는 일종의 오타쿠처럼 그려졌지만, 실제 주커버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전문학에 심취해 호머의 '일리어드'를 암송하는 게 특기이기도 했고, 펜싱 팀 주장을 맡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주커버그가 하버드 내 명망 있는 서클인 파이널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골몰했다는 영화 속 설정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주커버그가 하버드 내 WASP 그룹에 끼지 못하는 유태인 가정 출신이라는 점과 그에 따르는 딜레마들은 오히려 영화 속에선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중심 줄기와 기초 인물 설정에서부터 실제와 차이가 나고 있으니 주커버그 본인조차도 "영화 속 나와 실제 나의 공통점은 옷 차림새 뿐"이라고 평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각본을 쓴 애런 소킨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확성이란 정확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커버그 본인조차도 이에 큰 동요는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실제 자신과 다름을 피력하긴 했지만, '소셜 네트워크'에 명예훼손 관련으로 소송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종류의 논란은 미국 영화에서 언제나 있어왔다. '소셜 네트워크'가 딱히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2002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뷰티풀 마인드'도 마찬가지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다뤘지만, 일단 내쉬의 아내가 남편의 정신병에도 늘 그의 곁을 지켰다는 설정 자체부터가 사실과 달랐다. 게다가 발병 이후 내쉬는 동성애적 경향을 보였지만, 영화 속에선 물론 그런 부분은 다뤄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를 다룬 '샤인' 등 보다 노골적인 왜곡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경우를 돌아보자. 한국은 사실상 이런 종류의 '과감한 픽션'이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다. 현재 생존하는 인물의 경우는 가히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대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생존 인물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자체가 잘 만들어지질 않는다. 기껏해야 실존 장애인의 인간승리 콘텐트 정도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은 말 그대로 소송 천국이다. 조금만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곧바로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건 소송이 이뤄진다. 그런데도 영화는 계속해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을 왜곡해버린다.

반면 한국은 실존인물 얘기도 아닌 픽션 '춘향전'을 모티브로 삼은 '방자전'을 두고도 원전을 왜곡했다며 반발이 들어온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대개 이런 상황에 대한 해석은 유사하다. 영화·드라마와 실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구미·유럽의 성숙한 문화의식, 미국 수정헌법 1조와 표현의 자유 등등이 거론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해답은 조금 다른 부분에 있다. 이른바 '셀리브리티' 개념의 정착 여부다. 한국에서는 각종 유명 인사들에게 '공인(公人)'이라는 희한한 개념을 붙이고 있긴 하지만, 이를 굳이 미국식으로 옮기면 셀리브리티(Celebrity)다. 말 그대로 '유명인' 정도의 의미다. 그런데 이 셀리브리티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조금 특이하다. 한국은 공인에 대해 사회적 의무와 책무를 요구하고 있지만, 서구는 셀리브리티들에게 관용과 관대를 요구한다. 특히 미디어와 대중문화계의 접근에 대해 그렇다. 모두의 선망을 받는 유명인들을 놓고 한 번 '놀아보려는' 대중적 욕구에 관용을 베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자신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기부 등의 방식을 통해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면, 미국에선 자신을 놀리는 TV 쇼프로그램이나 자신을 왜곡한 영화·드라마 등을 내버려둬야 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따르지 않는다 해서 굳이 야박하다는 평가를 받진 않지만, 셀리브리티 입장에서도 이런 종류의 왜곡과 힐난은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뭔가 특출 난 재능이 있어 성공을 거두고 셀리브리티가 되긴 했지만, 일단 셀리브리티로 인식되고 나면 바로 그 점 덕택에 성공을 이어나가게 되는 구조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셀리브리티성의 유지를 중심으로 생각해볼 때 '모든 뉴스는 좋은 뉴스', '모든 관심은 좋은 관심'이라는 입장이 서게 되고, 자신을 엉망으로 왜곡해대건 어쩌건 '장안의 화제'가 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구조가 성립돼있는 환경이 아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패리스 힐튼처럼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조차 셀리브리티성 유지로 이어지는 구조는커녕 뭔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는 순간 해당 인물과 그의 사업영역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니 관용과 관대도 베풀 수 없고,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접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국 환경에선 '소셜 네트워크' 같은 영화가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현존 인물마저 왜곡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미국도 절대 왜곡할 수 없는 콘텐트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미국사(史) 관련 콘텐트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순간 해당 콘텐트는 바로 교육적 효과를 내게 된다. 특히 TV드라마가 심각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CNN의 테드 터너가 제작한 남북전쟁 관련 콘텐트 '게티스버그'는 사건의 진행과정과 시간 배열까지도 모조리 사실에 정확히 부합하도록 편집증적 노력을 가한 것이고, 와이어트 어프가 활약했던 OK 목장의 결투 역시 1950~60년대의 낭만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1990년대에 이르러 실제 상황에 무한히 가깝도록 변환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사극의 왜곡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지난해 MBC TV '선덕여왕'은 아예 역사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설정들을 끼워 넣으며 현실 정치풍자극으로 나아갔고, KBS 2TV '천추태후'는 '현대적인 여성상'을 부여하기 위해 천추태후를 잔 다르크처럼 다뤄버렸다. '대조영' '주몽' '연개소문' 등 고구려를 다룬 드라마들은 특히 왜곡정도가 심하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는 늘 반발이 있어왔지만, 그래도 이런 역사왜곡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 통해 딱히 '피해'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영화는 영화일 뿐'을 외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해하면서도, 미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을 외칠 수 있는, 한국과 미국 간 정반대 문화 환경의 한 대목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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