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한류 드라마·영화 꼴을 면할지어다

신동립 2010. 9.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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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냄비 안에서 물이 끓어올라야 냄비 밖으로 넘치게 된다."

생활 기초화학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문화의 해외 전파에 대한 기본 법칙 얘기다. 일반적으로 자국 문화상품의 해외진출과 관련된 전략은 한 가지 공통적 이해를 갖고 있다. 자국 내에서 원하는 콘텐트와 해외에서 먹히는 콘텐트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시장을 겨냥한 콘텐트라면 자국에서 무시당했더라도 얼마든지 진출이 가능하다는 것.

물론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산업 전체로 놓고 봤을 땐 얘기가 다르다. 개개 콘텐트는 국내와 해외 사이 선호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해당 콘텐트가 속한 문화 장르, 즉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음악이면 음악 등등은 무조건 '국내에서 활황을 맞고 있는 장르'만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국 내에서 이미 폭발적 인기를 얻고 시장 파이가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장르가 가장 해외로 나가기 쉬운 장르라는 얘기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라의 '미스터'가 발매 첫 주 3만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올리더니, 뒤이어 데뷔한 소녀시대는 아예 사회현상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포미닛의 경우 그 정도 폭발력은 아직 없지만, 일본에선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인식되며 일관된 음악적 궤를 지닌 실력파로서 대우받는 실정이다.

물론 이것도 얼핏 보면 단순한 틈새 전략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2003~2007년 현상적으로 일었던 한류 드라마 붐과 유사한 상황, 즉 '일본 내에서 채워지지 않은 수요'를 대신 채워줬기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가 순애(純愛)물에 목마른 30~50대 일본 여성층 요구를 채워줬다면,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은 귀여우면서도 섹시하고 카리스마적인 동경의 대상격 여성상을 10~20대 일본 여성층에 선사해줬다는 것.

개개 상품이 먹히고 있는 타깃층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그 먹힌 장르, 또는 콘셉트가 한국 내에서 이미 '끓어올라'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제2차 아이돌 그룹 붐은 이미 2007년 즈음부터 시작됐었다. 이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쌍두마차로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자 성(性)비가 무너지고 갑자기 여성 아이돌 그룹 전성시대로 돌입했다.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그룹들, 어마어마한 인원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성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붐은 아직 끝난 것도 아니다. 2007~2008년 데뷔한 '여성 아이돌그룹 1기', 2009년에 어마어마한 양으로 등장한 '여성 아이돌그룹 2기'에 이어 2010년에만도 이미 '3기'로 따로 칭해야 할 만한 많은 수의 여성 아이돌그룹이 시장에서 군웅할거하고 있다. 이 정도가 되니 '냄비 밖으로 넘쳐' 해외까지 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 따지고 보면 쉽다. 시장의 기본법칙이다. 한 장르, 그 중에서도 한 가지 콘셉트가 대중으로부터 사회문화 현상격 반향을 일으킬 경우, 시장은 그 상태로 정체되는 게 아니라 파이가 커져 버린다. 인디 신 등 여타 시장까지 흡수하는 건 물론이고 아예 대중음악 시장 자체의 파이까지 키워버리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렇게 시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쉽게 돈을 벌려하는 졸속 콘텐트들이 넘쳐나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도시괴담이다. 시장이 비대해지면 오히려 개개 콘텐트는 고도화 된다. 경쟁 구도가 치열해질수록, 그리고 그 치열함만큼 시장 파이가 확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될수록 서비스 즉 '퀄리티'는 더 높아지게 된다.

단순히 대중음악으로만 따지자면, 현 시점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의 싱글들 퀄리티는 전 세계 어디 내놓아도 먹힐 만큼 탁월하다. 그래서 일본 시장도 이게 아이돌 음악이 맞는지 아니면 아티스트 계열로 위치시켜야 할지 헷갈려하는 것이다. 거기다 한 장르가 빅뱅을 이루면 인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당연히 따른다. 여성 아이돌 그룹이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현실이라면, 정통 뮤지션이 되고자 했던 인력은 물론 모델을 하려 했던 인력, 배우가 되고자 했던 인력 등등이 모두 여성 아이돌 그룹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각 기획사는 이런 우수한 인력들을 수년 이상 연습시켜 완성된 인재로 키워낸 뒤 대중에 소개시킬 만한 여력을 갖추게 된다. 한 마디로, 오히려 졸속이 사라지고, 졸속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호효과를 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에서 끓어올라 고도화 되니 당연히 해외에도 감흥을 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유튜브 같은 세계 공용 사이트가 역할하는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국 내에서 해외 진출을 의도하기 이전부터 해외는 이미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 콘텐트를 받아 음성적 시장을 먼저 꾸리게 된다. 그리고 그게 해외 공식진출과 함께 가동되는 탄탄한 팬베이스가 된다.

생각해보면 한국 대중문화 상품의 해외 진출은 모두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여성 아이돌 그룹 붐처럼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대중문화 장르가 해외에서도 똑같이 대박을 터뜨리는 현상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은 뭐길래' 등 김수현 가족 드라마와 '별은 내 가슴에' 등 트렌디 드라마가 중국 등지에서 제1차 한류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1990년대 후반 당시를 돌이켜보자.

1990년대 당시 한국 TV드라마는 역대 최고의 활황을 맞고 있었다. 1992년 MBC '질투'로 처음 시작된 트렌디 드라마가 젊은 층을 흡수하며 시장 파이를 계속 키우고 있는 가운데, 김수현표 드라마를 중심으로 주말 가족 드라마 열풍이 더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KBS1 '용의 눈물' 등 사극 열풍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청년층과 남녀 중장년층이 모두 TV 앞에 모여 앉던 시기였다는 것.

이를 방증하듯 역대 드라마 시청률 1~3위까지는 모두 1990년대 드라마들이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KBS2 '첫사랑'이 65.8% 시청률로 1위, 2위는 MBC '사랑이 뭐길래' 64.9%, 3위는 SBS '모래시계' 64.5%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치우침 없이 나란히 1, 2, 3위를 거머쥐었으며, 장르도 트렌드, 가족, 시대극 등으로 다양했다. 그리고 물론, 현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60%대 시청률을 모두 돌파했다.

이렇듯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으니 당연히 우수한 인력이 투입되면서 점차 드라마 질이 높아지고 장르가 고도화됐으며, 그러니 자연스럽게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게 돼 한류 드라마 붐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 아시아권 대부분을 한류 드라마들이 휩쓸게 되자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었던 일본마저 한류 드라마를 받아들여 '겨울연가 신화'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영화 장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1996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강제규, 홍상수 등 유망한 미래 인재들이 대거 영화계에 데뷔한 해였다. 이런 인력 물갈이를 바탕으로 상업영화의 진화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퇴마록'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렇듯 긍정적 분위기를 이어나가자 투자체계에 번화가 생겨 창업투자 전문 금융회사의 영화제작 참여라는 새로운 투자방식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털은 기획력 중심의 프로듀서들에 투자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미래시장 확보를 장르 다양화로 잡고 있던 신진 프로듀서들은 날개를 달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99년에 마침내 가시화됐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자처한 '쉬리'가 서울관객 기준 245만 명을 끌어들여 외화 포함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전년도인 1998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관객 기준 25.1%에 그친데 반해 1999년에는 39.7%로 급상승했다.

이렇게 대활황을 겪으며 물이 안에서 끓어오르자 자연스럽게 밖으로도 넘쳤다. 한국영화는 1998년 307만달러 수출에 비해 1999년에는 597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려 전년대비 94% 성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는 '쉬리'의 일본 수출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쉬리'는 일본 시장에서 주간 흥행 1위를 비롯 총수익 18억엔이라는 대대적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2001년작 '엽기적인 그녀'는 1980년대 홍콩영화 '영웅본색'이 일으켰던 것과 버금갈 만큼의 전 아시아적 문화현상이 됐다.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마침내 일본에까지 입성한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 붐은 사실상 '당연한 일'이었으며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난 수년 간 그토록 끓어올랐던 장르, 콘셉트라면 당연히 해외로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만 겪고 있는 일도 아니다. 홍콩 역시 1980년대 홍콩 느와르를 중심으로 자국영화시장이 대활황을 겪자 곧바로 아시아는 물론 구미지역에까지 그 영향을 퍼뜨렸고, 좀처럼 자국 밖에서는 정서대가 맞지 않는다는 인도 특유의 춤추고 노래하는 '마살라' 영화들도 수십 년에 걸쳐 인도 내에서 확고부동한 자리를 지켜나가자 1990년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해외로의 전파가 시작되고 있다. 인도의 마살라 영화 '라간'은 아직 한국도 이루지 못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결국 자국 대중문화산업 기반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 국가라면 얼마든지 자신들 내의 트렌드를 해외로 전파시킬 수 있고, 특히 한국처럼 그 집중도가 어마어마한 나라라면 훨씬 더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지적해야만 할 부분이 있다. 현재 아시아권 내에서 제대로 된 한류를 타고 있는 건 아이돌 그룹들 뿐이다. 그 막강하던 드라마 붐은 이제 기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최대시장인 일본에선 '아줌마팬'들에 의해서만 명맥을 유지하며, 아이돌 그룹 붐을 타고 아이돌 그룹 멤버 출연작 중심으로 재편되는 '묻어가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외 여타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중국 등지에선 국가 정책으로 한국 드라마 블로킹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역시 2005~2006년 정도까지 한류 드라마와 유사한 순애물이 일정부분 반응을 얻다 이제는 수출 실적 자체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해외영화제에서의 성과도 2004년 '올드보이'의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이후 분위기가 점차 저하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역으로 뒤집어 보면 된다. 드라마, 영화 등이 한국에서 활황기를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TV드라마는 2007년을 넘어선 시점부터 시청률이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2000년대 초반까지 20%대 시청률은 딱히 성공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5%만 넘어도 '쾌조의 스타트'라 칭송이 자자하다. 젊은 층을 잃고, 그 다음으로 중장년 남성층을 잃은 뒤, 이제 남은 드라마팬은 중장년 여성층밖에 남지 않아서다. 그러다보니 중장년 여성층 취향에만 맞춘 막장 드라마들이 판치게 되고 그럴수록 환멸이 심해져 파이 자체가 줄어들어 버렸다. 물이 끓기는커녕 미지근하지도 못한 수준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2006년 '괴물'의 역대 흥행기록 경신을 기점으로 한국영화계는 분위기가 한풀 꺾여버렸다. 매년 한국영화 위기설이 도래한다. 올해는 특히 심하다. 최대 대목인 여름시장이 끝나가는 현 시점,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500만 수준인 '의형제'와 '아저씨' 정도다. 그러다보니 점차 시장이 위축돼 투자가 얼어붙고 인력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장르는 협소해지고 이전 흥행사례에 의존한 중급영화들이 주요 대목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니 분위기가 안 사는 것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한국 대중문화산업은 참 기괴한 고질병을 앓고 있는 듯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트렌드란 한 장르 내에서 특정 형식이나 방향성이 고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은 장르 자체가 통째로 트렌드를 탄다.

이를테면 TV드라마가 인기 있을 땐 TV드라마만 잘 된다. 그러다 영화 붐이 오면 모든 것이 영화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러다 영화가 시들해지면 이번에는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 붐이다. 그 동안에 여타 장르는 점차 모먼텀을 잃고 시들해져 간다. 그런 식으로 해당 장르의 자국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도 그 터전을 잃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번 융성한 장르는 무너지기 쉽지 않은데, 왜 한국만 이런 현상을 겪고 있는지 그 원인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한국 특유의 문화 '동네 축구' 현상, 즉 커다란 트렌드에 휩쓸려 한 곳으로만 모든 것이 몰려가는 현상이 장르 자체를 흔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해내지 못한다면 현재 아시아 등지를 거치다 일본에서 마침내 폭발한 여성 아이돌 그룹 붐 역시 그 위상과 시장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고, 한류 드라마와 영화가 이미 겪었듯, 일정 기간이 지난 뒤부턴 다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드라마 붐이 '겨울연가 붐'으로 끝나버렸듯 여성 아이돌 그룹 붐이 단순히 '소녀시대 붐'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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