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은 일본 못따라잡나

신동립 입력 2010. 8. 28. 10:02 수정 2010. 8. 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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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돼 대히트를 기록한 테라사와 부이치의 만화 '우주해적 코브라'가 할리우드 영화로 거듭날 예정이다.

'힐스 아이즈', '미러', 그리고 '피라냐 3D' 등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알렉산더 아야 감독이 테라사와로부터 영화화 권리를 취득, 직접 각본을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야 감독은 "나는 '코브라'를 꿈꾸며 자랐다"면서 "대부분은 유년기에 '스타 워즈' 외엔 없었지만, 나와 (공동각본을 맡고 있는) 그레고리 (레버서)에게는 '스타 워즈'와 '코브라' 둘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편 '아바타'로 다시 한 번 역대 흥행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커밍순닷넷과의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준비 중이던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 영화화인 '배틀 엔젤'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캐머런 감독은 "('배틀 엔젤' 각본을) '아바타'보다 먼저 썼고,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아직 내 레이더 안에 있는 프로젝트"임을 알렸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는 '배틀 엔젤'의 제작이 '아바타' 속편보다 먼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캐머런 감독은 지난 1991년 '터미네이터 2' 기자회견 당시 영화 첫 머리의 핵폭발 장면에 대해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참고했음을 알리는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영향 받았다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 역시 할리우드에서 제작 진행 중에 있다. '인셉션'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제작을 맡았다. 제작 초기 무려 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 제작비 탓에 일시적으로 진행이 중단됐지만, '일라이' '프롬 헬' 등을 연출한 휴즈 형제가 연출 의사를 보이면서 다시 제작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이언맨' 1편을 집필한 마크 퍼거스와 로크 오스트비가 각본을 맡았고, 2편의 영화로 나뉘어 제작될 수 있다는 후문이다.

이밖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바탕을 둔 할리우드 프로젝트들은 많다. 초기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맡을 것으로 보도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실사판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백수왕 고라이온'도 할리우드의 흥미를 끌고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할리우드의 러브콜도 여전하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로봇 소재 SF영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이미 '트랜스포머' 1편이 전 세계에서 7억970만9780달러, 2편이 8억3629만7228달러를 벌어들이는 메가히트를 기록했음에도 할리우드는 이상하게 그 편승작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 로봇 영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도 있지만, 로봇 디자인 등 노하우와 아이디어 측면에서 아직 준비가 안 돼있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 애니메이션의 원산지인 일본에 근간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셈이다. 돌이켜보면 '트랜스포머'부터가 일본이 원산지였다는 점도 크게 작용을 하고 있다.

다른 원인은 근래 들어 일기 시작한 '어두운 SF 만화원작 영화' 붐이다. '왓치맨' 등 프랭크 밀러 원작만화의 영화화부터 시작, 원작만화의 어두운 색채를 되살린 '다크 나이트'의 대대적 성공 이후 이 같은 붐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PG-13 시장 내에서의 만화원작 영화화 인기를 바탕으로,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의 저자 마크 웨이드가 분석 글 '슈퍼맨에 관한 진실: 그리고 우리 모두에 관한 진실'에서 밝혔듯 "X세대는 현재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불공정하며, 훨씬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있다고 여긴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지닌 '어두운 SF 만화'는 거의 동이 난 상황. 결국 성인용 SF 만화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일본으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워낙 콘텐츠도 많고, 똑같이 인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아이디어와 디자인 측면에서 더 우월한 일본 만화가 구미에 맞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신선함과 익숙함을 각각의 시장에서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먼저 미국 내에서는 아무리 일본 만화가 깊숙이 침투해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만화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땐 메인스트림이라 보기 어렵다. 일반인은 아예 모른다. 따라서 신선함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인셉션'처럼 기상천외한 오리지널 아이디어로 포장돼 단순한 미디어 이동이 아닌 일종의 대중문화 이벤트로 다가설 수 있다.

반면 미국을 벗어나 아시아와 유럽 등지로 가면 일본 만화는 만화 시장의 중심축에 해당된다. 굳이 만화 팬이 아니더라도 '기동전사 건담',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은 젊은 층 대부분이 알 정도다. 이 같은 팬베이스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일본 본국에서도 자국 SF 만화의 영화화 열기가 이제 막 불 붙기 시작했다. 이유는 위 할리우드의 경우와 거의 같다. 일본에서도 만화 원작의 팬베이스는 막강하고, 일본 시장에서 역시 다소 어두운 SF 영화 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2주 전에는 막강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를 제치고 '인셉션'이 주간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소위 'X세대적 특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또한 한국의 '쉬리'가 일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이후 일본영화산업은 이에 고무돼 수년 전부터 '일본형 블록버스터' 제작에 힘을 기울여왔다. '일본침몰', '우미자루', '음양사', '남자들의 야마토' 등 이전까진 상상치 못했던 초대형 블록버스터들을 제작해 흥행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역량이 쌓여 이제는 복잡한 기술과 규모가 요구되는 자국 SF 만화의 영화화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게 됐다.

2006년 '데스노트' 전후편의 어마어마한 성공이 첫 타자가 됐고, 이어 '20세기 소년' 3부작도 고른 흥행을 보여줬다. '얏타맨' 실사판은 감독을 맡은 미이케 다카시의 사상 최고 히트작이 됐다. 그리고 올해 12월1일 마쓰모토 레이지의 전설적인 SF 만화/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실사판이 기무라 타쿠야 주연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1989년 '건헤드'부터 시작해 '캐션', '데빌 맨' 등을 '말아먹은' 과오를 이제야 씻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의 만화 시장은 십 수년째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팬베이스로서 작용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한국 역시 '어두운 SF 영화' 자체에는 일정부분 이상의 애정을 갖고 있다. '인셉션'은 25일까지 541만6877명을 모아 올해 개봉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고, 같은 감독의 전작 '다크 나이트'도 407만여명을 동원한 바 있다. '터미네이터 4: 미래 전쟁의 시작' 역시 452만7614명을 모아 한국을 일본,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수익을 벌어다준 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직접 '어두운 SF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아니, 아예 SF 영화 자체를 거의 안 만든다. 아무리 기술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할리우드 수준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자국영화에 대해서는 철저히 '현실 반영'을 요구하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을 잊는 영화'는 해외에서만 찾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내추럴 시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몇 안 되는 담대한 SF 프로젝트들이 초대형 참패를 겪는 결과를 맞았고, 이후 SF는 '한국영화시장에서 다시는 시도해선 안 될 장르'로 손꼽히게 됐다. 딱히 SF 장르에 넣기 힘든 괴수 영화 2편, '괴물'과 '디워'만이 성공을 거뒀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도 지금쯤이면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기존 시장법칙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대중 취향이 흘러가는 방향 정도는 명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 정도라 여겼던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만 놓고 봐도 취향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인셉션' 흥행이 대표적인 예다. 전반적으로 SF 장르에 대해 '볼거리'만을 추구하던 시점이 지나가고 있다. 성찰적 SF '더 문'은 극장흥행에서는 실패했을망정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스플라이스' 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SF라고 해서 꼭 현실 반영이 떨어지리라는 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서 환영받은 스페인 SF영화 '타임크라임' 등은 현실 내에서 벌어지는 시간여행 소재로 흥미로운 플롯 구조를 만들어냈다.

어찌됐건 한국영화시장이 SF, SF 만화 원작을 등한시하는 사이, 한국의 대표적인 SF/호러 만화 중 하나인 형민우의 '프리스트'는 결국 한국이 영화화하지 못하고 할리우드가 가져가 버렸다. 올해 초 '리전'을 성공시킨 스코트 찰스 스튜어트 감독과 폴 베터니가 다시 만나 크랭크인, 내년 5월13일 미국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일본은 현재 자기 SF 만화 콘텐츠를 할리우드에 팔아 세계의 관심과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직접 제작한 자국 SF 만화 및 그 영화화에 대한 관심으로 유도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프리스트'가 미국 및 세계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 해도 이에 호기심을 느낀 세계가 막상 한국산 SF 영화, SF 만화 원작 등을 돌아보려 할 때 내밀 콘텐츠가 없다. 가장 가까운 영화가 2012년에 개봉될 프랑스 SF 만화 원작,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다. 그러나 이 유럽 만화의 영화화는 성공을 거두더라도 '한국 SF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어지기 힘들고, 오히려 장 마르크 로셰트의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 치닫기 쉽다.

결국 또다시 고양이 목에 과연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의 이야기다. 마지막 검증 사례가 이미 7, 8년 전인 방치 시장, 그러나 '어쩌면 터질 수도 있는' 시장, 자국 SF 영화의 시장, 자국 SF 만화의 영화화를 통한 미디어믹스 시장에 과연 누가 먼저 방울을 달 것인가. 망설이는 사이 '기계전사 109', '타임시커스', '노멀 시티', '폐쇄자' 등 한국의 걸작 SF 만화들은 서서히 동시대성을 잃어가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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