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성룡, 젊은 비..좋아할 까닭은 없다

신동립 2010. 6. 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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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무술스타 성룡이 오랜만에 한국 미디어에 조명됐다. 불행히도 성룡 자신의 이슈는 아니었다. 성룡은 한국의 가수 겸 배우 비가 2010 MTV 무비어워즈에서 출연작 '닌자 어쌔신'으로 '최고의 액션스타상(Biggest Badass Star)'상을 수상할 때 시상자로 등장했다. 그러다보니 '동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성룡 자신도 1995년 같은 MTV 무비어워즈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어떤 의미에선 아시아 액션스타끼리 신구교체 의미도 있었다.

어찌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드는 장면이다. 성룡 자신도 지난해 '스파이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를 내놨다. 그런데 MTV 무비어워즈에서 단 한 부문에도 후보에 못 들고 비에게 상만 주고 내려간 셈이다. 스타들의 대중적 인기를 가늠하는 MTV 무비어워즈에서 성룡이 마지막으로 후보에 오른 것은 지난 2007년의 '러시아워 3' 때, 마지막으로 상을 수상한 것은 2002년 '러시아워 2' 때다. 그 사이 성룡은 할리우드에서 '메달리온' '80일간의 세계일주' '스파이 넥스트 도어' 등 꾸준히 실패작을 쌓아갔고, 이연걸과 공동 출연해 화제를 모은 '포비든 킹덤'마저도 5204만293달러를 벌어들이는 '중박'에 그쳤다.

그러다 다시금 MTV 무비어워즈에 서게 된 계기가 11살짜리 배우 제이든 스미스를 키워주는 '사부' 역할을 맡은 '베스트 키드' 리메이크였다. 그 홍보 차 제이든 스미스와 함께 시상대에 섰다. 그러나 이런 역할은 스타로서의 커리어가 끝나갈 때나 맡는 거다. 1980년대 액션스타 척 노리스가 어린 소년의 환상 속 영웅으로 등장했던 1992년작 '사이드킥'과 유사하다. 이후 척 노리스는 비디오용 B급영화를 전전하다 마침내 TV드라마로까지 내려왔다. 성룡이 지금 딱 그런 단계라는 얘기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성룡의 나이도 어느덧 56세, 더 이상 몸으로 부대끼는 액션스타를 맡기엔 무리다. 나아가 성룡 같은 무술스타 뿐 아니라 웬만한 스타들도 50대 중반을 넘어서면 스타 파워가 급격히 떨어진다. 당연한 '스타교체 체인'에 가깝다.

그러나 성룡의 몰락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 일단 이번 MTV 무비어워즈부터 보기로 하자. '최고의 액션스타상'을 수상한 비는 사실상 무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배우가 아니다.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비와는 차이가 있다.

여전히 미국 대중은 아시아배우가 액션영화에 출연할 시 '무술스타'를 기대한다. 그게 무명의 아시아배우를 쓰는 유일한 이유다. 그런데도 비에게 상을 줬다는 건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해, '무술스타가 필요 없어진 시장 분위기'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 대중이 아시아풍 무술영화에 식상한 걸까. 무술스타들의 미국 시장성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할리우드 입성 무술스타 쌍두마차인 성룡과 이연걸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흥행실적이 떨어져왔다. 이연걸의 경우 현재 단독주연이 아예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철마류'로 관심을 모아 할리우드에 입성한 견자단은 '도착 즉시 사망'했다. '하이랜더 4-엔드 오브 게임'에서 조연, '블레이드 2'에 단역출연, 성룡 주연 '상하이 나이츠'에 조연급 출연한 게 할리우드 커리어 전부다. 마니아층에게서 부단한 관심을 모은 태국 액션스타 토니 자는,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미국 내 마니아층의 전유물로만 남았다. 할리우드에 발도 못 들여놨다.

그러나 이들의 할리우드 흥망사를 잘 살펴보면 시기적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 성룡은 1996년 '홍번구'로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입성, 2003년 '상하이 나이츠' 정도까진 그래도 그런대로 나갔다. 속편 프리미엄을 빼고 생각하면 2002년작 '턱시도' 정도까지가 '스타급'에 걸맞는 수익을 올렸다. 이 시기에는 홍콩에서 제작한 영화들까지도 1000만~2000만 달러 정도는 벌어들이는 쾌거를 보였지만, 지금은 할리우드 제작영화가 그 정도 수치다.

이연걸은 1998년 '리쎌 웨폰 4'에서의 악역으로 출발, 2000년 '로미오 머스트 다이'가 성공하면서 전형적인 '중박 스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연걸의 몰락은 빨랐다. 2003년작 '크레이들 투 그레이브' 정도가 마지막 중박이었다. 2년 뒤 '더 독'부터는 확실한 하락세였다.

견자단이 할리우드에서 주목받은 건 1993년작 홍콩영화 '철마류'가 2001년 미국 개봉돼 1468만1661달러라는 '성룡 홍콩영화급 흥행'을 거두면서부터다. 그런데도 제대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안 써줘 커리어가 끝난 것이다. 토니 자의 경우 출세작 '옹박'이 미국 개봉된 게 2005년이다. 이후로는 극장개봉도 잘 안 되고 대부분 비디오로 직행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미국시장에서는 대략 2002년 즈음부터 아시아 무술스타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게 옳다. 성룡과 이연걸 등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린 급은 조금 더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발도 못 댔다. 결국 1996~2002년 사이가 미국시장에서 아시아 무술스타의 시대였던 셈이다. 이후로는 누가 와도 안 되고, 올 수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8년여가 흘러 비가 MTV 무비어워즈에서 상을 받는 시대로 돌변했다. 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알쏭달쏭한 시장 분위기가 돼버린 걸까.

아주 단순하다. 단 한 편의 영화가 아시아 무술스타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부숴버렸다. 1999년작 '매트릭스'다. '매트릭스'는 아시아 무술영화가 미국 대중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잘 파악한 현명한 영화였다. 성룡이 '홍번구'로 미국시장에 2차 도전했을 때, 모든 트레일러는 '성룡 본인이 이 모든 스턴트를 다 했다'는 점을 과시했다. 그러나 미국 대중이 주목한 것은 그런 버스터 키튼적 스턴트 아크로바트가 아니었다. 춤사위에 가까운 과장된 무술동작 자체를 즐겼다. 실제로 자기가 다 했건 아니건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무술 전문배우 없이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첫 타자가 '매트릭스'였고, 무술 전문배우가 아닌 이들을 공중에 띄워본 원화평을 액션감독으로 초빙해 같은 방식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을 공중 부양시켰다. 거기다 고급 CG를 버무려 훨씬 더 근사한 무술동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매트릭스'의 성공은 금세 할리우드 전체로 퍼져나갔다. '머스켓티어' '미녀삼총사' '킬 빌' 등이 그렇게 등장했고, 모두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대중이 '진짜 무술'보다 '만들어진 무술'을 더 선호하다보니, 나중에는 성룡, 이연걸 영화들마저 와이어 액션, CG 액션으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차 '진짜 무술스타'의 필요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흐름에 반발해 프랑스 영화제작자 뤽 베송이 이연걸을 놓고 '와이어 없는 진짜 무술영화'를 기획, '키스 오브 드래곤'과 '더 독'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모두 시장에서 무시당했다. 미국 대중이 즐긴 건 '진짜 무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세월이 흘러 흘러 비의 MTV 무비어워즈 수상까지 왔다. 이젠 무술스타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상황이다. 마니아층의 전유물에 가까워졌다. 어느 누구건 근사한 무술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중요한 건 그 배우가 무술장면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지녔느냐 아니냐로 판가름 나게 됐다.

비는 그에 충분한 조건을 지녔다. 무술은 할 줄 모르지만 일단 아시아인이라 '무술을 잘 할 것 같은 이미지'는 된다. 거기다 실제 무술스타들보다 더 근사한 몸을 지니고, 더 여성에 어필하는 소년다운 얼굴을 지녔다. 오히려 더 상업성 있는 조합이 나온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조합은 성룡과 이연걸의 근래 단독주연작들보다 더 높은 '닌자 어쌔신'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결국 '최고의 액션스타상'까지 타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히 아시아 무술스타들의 할리우드 몰락 정도로만 해석될 일이 아니다. 미국 외 국가 영화산업의 미국시장 진출 전략 전체에 분수령이 되고 있다. 아시아 상업영화의 맹주처럼 여겨졌던 홍콩영화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홍콩영화들이 '복제되기 쉬운 속성'을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과 노하우만 받쳐주면 누구라도 홍콩 무술영화의 '진수'를 베껴올 수 있었다.

반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그토록 독보적인 위치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점도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일본 외 국가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어린이 관객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성인대상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 시장이 일본만큼 큰 문화시장은, 여타 아시아 국가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없다. 일본은 '기술적으로는 복제될 수도 있지만 시장 여건상 복제가 불가능한 아이템'을 지니고 있기에, 세계 각국의 마이너 애니메이션 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산업은 과연 이런 독보성, 복제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이것이 성룡의 몰락과 그를 대체하려는 비의 급부상에서 진정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그게 없다면, 우리는 '액션스타 비'를 할리우드에 선사할 수는 있을지언정 '액션스타 비가 출연한 한국영화'는 팔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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