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기의 시네마니아] 60년 묵은 명작 퍼레이드, 日 거장과의 감동적 해후

2010. 7. 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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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덴마크 스웨덴 합작영화 '미후네'의 제목은 일본배우 미후네 도시로(1920~1997)에서 비롯됐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가 어린 시절 함께 봤던 '7인의 사무라이'의 주인공 미후네의 흉내를 내며 우애를 다지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열혈 팬을 자처하며 후원을 마다 않던 '일본영화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의 영향력과 세계적 인지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이야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 받지만 구로사와의 작품이 세계의 인정을 받기까진 웃지 못할 우여곡절이 있었다. 구로사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라쇼몽'(1950)은 일본 흥행에 참패했고, 평단의 평가도 썩 좋지 않았다. 1951년 뒤늦게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쥐며 일본영화의 우수성을 인정 받았지만 정작 열도에선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베니스영화제 측에선 구로사와를 닮은 동양인을 긴급 수배해 시상식을 열어야 했다.

"제작사 대표도 그랑프리라는 단어를 몰랐던 시절이다. 잇따른 흥행 실패로 생긴 우울함을 달래려 낚시를 다녀오던 구로사와도 그의 아내가 '축하합니다. 그랑프리랍니다'라고 말하자 '그랑프리가 무엇이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라쇼몽'의 스크립터 등으로 구로사와와 오래도록 일한 노가미 데루요(83)의 회고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막을 올렸다. 개막작은 '라쇼몽'으로 2년 전 일본현대미술관 영화센터에 의해 디지털로 복원된 버전이 상영됐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개막식 행사에서 "기술이 앞서지 않고 인간의 땀냄새 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들 콧등에 송공송골 맺힌 땀까지도 구로사와의 연출 의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치밀하고 뛰어난 영화였다. 328석을 일찌감치 매진시킨 남녀노소 관객은 60년 묵은 명작 앞에서 숨죽였다.

2일 '천국과 지옥'을 관람한 한 후배는 "정말 숨막혀 죽을 뻔 했다"는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다. 유괴 사건을 지렛대 삼아 사회 계층 문제와 인간 본성을 들추는 이 서스펜스 넘치는 영화는 비교적 덜 알려진 명작 중의 명작이다.

21편이 영사기에 오르는 이번 특별전엔 '시간이 나면'이 아니라 꼭 시간을 내서 봐야 할 영화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공짜다. 2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으면 절대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보장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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