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차명계좌, 언론은 궁금하지 않나

이정환·김상만 기자, black@mediatoday.co.kr 입력 2008. 9. 26. 09:50 수정 2008. 9. 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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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뉴스 톺아읽기] 삼성 차명자산 의혹? 언론이 쉬쉬하는 까닭은

[미디어오늘 이정환·김상만 기자]

회장 소유의 200억 원대 차명계좌를 관리하던 직원이 조직폭력배에게 회장의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자 살인을 청부한, 엽기적인 사건이 드러났다. 서울 경찰청 형사과는 이 사건을 6개월 가까이 내사하다 24일 언론에 공개했다.

문제의 대기업 회장은 CJ그룹 이재현 회장이다. 경찰은 CJ그룹 전 재무팀 부장인 이아무개씨에 대해 살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에 대한 영장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으나 살인미수에 가담한 조직폭력배 박아무개씨 등 4명은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져 구속된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5년 6월부터 이 회장의 개인자금을 운용·관리해오다 사채업과 사설 경마 등에 투자해 거액의 이자를 챙겨주겠다는 박씨의 꼬임에 넘어가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180억 원을 빌려줬다가 이 가운데 8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자금 회수가 다급해진 이씨는 지난해 5월 다른 조직폭력배 정아무개씨에게 착수금 3천만 원을 주고 박씨를 살해해 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그러나 박씨가 살인에 실패하자 이씨는 또 다른 조직폭력배 윤아무개씨에게 3억 원을 주고 다시 살인을 청부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후 정씨와 윤씨는 이씨를 상대로 살인청부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 11억8천만 원을 갈취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가 관리한 자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박씨에게 빌려준 돈이 180억 원인 점을 미뤄볼 때 200억 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유일하게 이씨를 직접 인터뷰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씨가 관리한 자금은 모두 400억 원이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살인교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돈이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돼 왔다는 사실이다. CJ그룹은 문제가 확산되자 "이 회장이 선대로부터 개인적으로 상속받은 차명주식으로 회삿돈이나 비자금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회사 대주주의 경우 증권거래법에 공시의무가 있어 회사 차원에서 대주주의 관련 자금을 관리했던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CJ그룹은 전체 차명계좌의 전체 규모나 구체적인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는 사촌 사이다. 삼성그룹 비자금의 꼬리가 이 사건에서도 발견되는 셈인데 CJ그룹은 경찰 수사가 확산되자 지난 8월 뒤늦게 이 차명자산을 세무서에 자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사건 관련 언론 보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곳은 24일 동아일보였는데 동아일보는 일간지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단독 기사로 썼으면서도 CJ그룹이나 이 회장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모 대기업 총수"라고만 밝혔을 뿐이다. 석간 헤럴드경제도 이날 오후 이 사건을 보도했는데 역시 "유명 대기업 총수"라고만 밝혔다.

이어 25일에는 상당수 언론이 이를 보도했는데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가 실명을 밝힌 반면,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세계일보,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등은 여전히 "A그룹"이나 "대기업 A사", "C사" 등으로 이니셜 처리했다. 그나마 26일에는 한겨레와 세계일보 말고는 일제히 지면에서 사라졌다.

▲ 동아일보 9월24일 12면. "모 대기업 총수"라고만 밝히고 있다.
▲ 한겨레 9월26일 10면.

세계일보는 26일 사설에서 실명을 밝히고 "이 회장 개인 자금이 어떤 돈이고 어떻게 운용돼 왔는지 철저히 밝혀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25일 "경찰이 이씨의 살인교사 동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점도 의심이 간다"면서 "경찰 말 대로라면 이씨는 박씨를 죽이려고 2번이나 살인 교사를 한 것인데 박씨가 죽으면 돈을 받아낼 상대가 없다는 것이어서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사 차원의 개입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한겨레도 26일 "조직폭력배를 해결사로 동원하는 대담한 범죄행위를 그룹쪽과 아무런 상의없이 혼자 결정했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이 취재한 결과 CJ그룹 홍보실 관계자들이 24일 저녁 일부 언론사를 돌면서 이 회장 등을 익명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숱하게 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데다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CJ그룹이 적극적으로 언론 입단속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 CJ그룹 홍보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데 실명을 밝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살인청부 사건과 무관하게 거액의 차명계좌가 드러난 상황이고 정확한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언론의 소극적인 태도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도 적절치 못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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