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는 어떻게 받는 거야?

2010. 1. 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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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아이폰 사용기 ①]인간의 편리를 위한 통신기기가 아닌 '숭배'와 '학습'의 대상, 아이폰을 알현하다주의- 아래는 단지 평범한 30대 중년 남성과 그와 비슷한 지능을 갖춘 동료들의 '찌질한 스마트폰 도전기'에 불과하다. 아이폰 활용에 관한 고급 정보를 찾으려 한다면 인터넷 검색을 추천한다.

지난해 구둘래 팀장이 할부로 구매한 아이팟을 가져왔을 때, 대인관계에 능한 대인배였다면 이렇게 진기한 물건은 21세기 개막 이후 처음 본다는 듯 열광해야 했다. 세상 읽는 눈이 좀더 밝았더라면 옆자리 김미영 기자가 '아몰레드'를 자랑했을 때, 시큰둥하게 "이리 줘봐. 삶아서 울 아부지 갖다드리게"라며 썰렁한 농담을 건넬 일이 아니었다.

남들은 스마트폰이다 최신형 휴대용 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이 아이팟으로 메주를 쑤든 빙수를 갈아먹든 '쓸데없는' 부가 기능을 잔뜩 탑재해 값을 높게 부르는 휴대기기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라며 나의 길을 가는, 무심한 듯 시크한 도시 남자였으므로 모름지기 휴대전화란 휴대가 용이하며 통화가 원활하면 그만이라는 철학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감자 캐는 아낙네 vs 킬힐 뉴욕녀

아이폰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 서울에는 눈이 몹시 내렸다. '설마' 했지만 슬픈 예감 틀리지 않았다. 아이폰 대신 '폭설로 인한 배송 연기'라는 문자가 배달됐다. 우리의 만남은 이미 두 차례 연기된 뒤였다. 오늘 받을 휴대전화를 내일 받는다고 해서 그사이 아이폰이 '성인폰' 되는 것도 아닐 터인데 부아가 치밀었다. 폭설 따위를 핑계로 고객과의 약속을 내팽개치는 통신사의 무신경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파격 혜택'이란 유혹과 사진팀 정용일 선배의 강권에 못 이겨 덜컥 아이폰을 신청한 건 정말 바보짓이었다는 후회가 뒤늦게 해일처럼 밀려왔다.

아이폰을 손에 쥔 것은 약속한 날로부터 거의 일주일 뒤였다. 첫 느낌은 뭐랄까, 그동안 써왔던 구형 휴대전화가 시골에서 감자 캐던 아낙네였다면, 아이폰은 뉴욕에서 서울까지 13시간 비행을 마친 뒤 샤넬 선글라스에 킬힐을 신고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는 도시 여성의 이미지였다. 날렵하면서도 매끈한 뒤태, 그 위에 찍힌 씹다 버린 사과 문양은 과연 매력적이었다.

감탄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1월7일, 그날은 오늘처럼 < 한겨레21 > 마감날이었다. 무작정 개통을 신청했다. 아이폰을 놓고 벌인 멍청한 짓 퍼레이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멍청한 짓 순위는 이렇다.

1. 나의 정보통신기기 활용 능력을 과신한 것2. 마감날 아이폰 개통을 시도한 것3. (휴대전화를 새로 구매할 때 언제나 그랬듯) 사용설명서를 제품 박스와 함께 버린 것정보통신기기란 무엇인가. 인간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활용하는 물건이다. 숭배나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CD를 굽는다'라고 했을 때 실제로 연탄불 위에 CD를 갖다대는 만행만 저지르지 않을 정도가 되면 충분하다. 단, 아이폰만 아니라면 말이다.

이날 오후 개통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이후에도 아이폰이 먹통이었던 이유는 순전히 업무 폭주로 인한 통신사 직원의 부주의 탓이라고 믿었다. 게으른 직원에게는 준엄한 꾸짖음이 약이다. 아이폰 신청 당시 명함을 남기고 간 직원은 통화조차 되지 않았다. 음성을 남기고 문자를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다. KT 홈페이지를 직접 뒤진 끝에 대표번호를 찾아냈다.

"아이튠즈 동기화는 하셨나요?"

"1시간 30분 정도 지나면 개통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아이폰은 물론 전에 쓰던 휴대전화도 먹통이거든요. 업무 처리를 왜 이런 식으로 하시죠?"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당장 확인해주세요. 중요한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뭡니까?""그런데 고객님 혹시, 아이튠즈 동기화는 하셨나요.""…, 그게 뭔데요?""…."아이폰은 일반 휴대전화와 달리 개통 신청을 했더라도 아이폰 전용 프로그램 아이튠즈를 통해 아이폰 등록을 마쳐야 전화 기능을 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개통 신청 당시 이런 필수 정보를 귀띔해주지 않은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일반 휴대전화와 개통 절차가 다르다면 가입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객님, 제품 사용설명서는 한번 보셨는지요."그제야 내가 제품 사용설명서를 개봉 직후 곧바로 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기에 앞서 개통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놓은 아이폰 제조사 대표는 심술궂은 변태 소인배임이 틀림없다는 단정을 내렸다.

개통 과정에서의 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폰을 같이 구매한 건너편 자리의 동료 이순혁 기자는 전화벨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거 전화를 어떻게 받는 거야?"라는 불평이 쏟아졌다. 경제팀 조계완 선배는 유심(USIM)칩을 삽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송 장소를 집으로 신청한 정치팀 김보협 선배는 아예 그때까지도 아이폰을 받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옆 사무실의 고아무개 선배는 개통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문자메시지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아이폰 대란'이었다.

개통 과정에서의 대혼란이 지나간 뒤에도 아이폰은 여전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와이파이(Wi-Fi) 인터넷 연결이 쉽지 않았고, 아이폰의 최대 강점이라는 앱스토어(App Store)의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응용프로그램) 내려받기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인터넷을 직접 검색해서 해법을 찾아내는 수고를 감수하기보다 전화를 걸어 상담원을 괴롭혔다. 어느 시간대에 상담원 연결이 쉬운지 파악해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블루필'이 될 것인가, '레드필'이 될 것인가

사용법이 극악한 수준이라는 것 이외에도 아이폰의 단점은 많았다. 명색이 스마트폰이라면서 교통카드 기능을 삽입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 고리를 걸 수 있는 '구멍'도 없었다. 전화번호부 검색 기능이 약했고, 맨살이 닿아야 작동되는 터치패드 방식은 아이폰의 강점이라지만 장갑이 필수품인 겨울철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했다. 외부에서 전화를 받으려면 이 엄동설한에 장갑을 벗어야 한다는 거 아닌가. 아이폰 보호용 필름 한 장이 2만원이나 한다는 사실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열거한 아이폰의 단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언제 어디서나 탁월한 웹 검색 기능을 뽐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응용프로그램도 찾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폰 신봉자들은 이 두 가지 장점만으로도 무수한 불합리와 비상식을 견딜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티끌만 한 잡티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은 물론 정전기 방지용 스프레이까지 뿌린 뒤 조심스레 2만원짜리 '얇은 비닐'을 아이폰에 덧씌우는 행위도 그들에겐 하나의 성스런 '의식'인지 모른다. 아이폰이 창출해내는 또 다른 신세계로 가는 티켓을 사는 행위다. 신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앱스토어에 있다. 나는 지금 아이폰이 창출해내는 또 다른 세계, 매트릭스로 떠나는 '블루필'과 저질 유저로 남을 수 있는 '레드필'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일단 이 마감이 끝난 뒤 그동안 내려받기 해놓았던 무료 어플리케이션을 충분히 이용해본 뒤 결정할 생각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 한겨레 > [ 한겨레21 구독|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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