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저벅.. 들리세요, 조선시대 천릿길의 부활 꿈이

2011. 8. 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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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에 미쳤다" 땅끝서 임진강까지 삼남길 개척단 동행

양회(洋灰)를 물에 이겨 바닥에 바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길은 속도를 위한 공간이었다. 도시의 대로부터 시골의 고샅까지 나날이 넓히고 펴고 역청을 입혔다. 그래서 자동차가 길의 주인이 됐다. 두 다리로 길 가운데 서 있자면 어째 어색하고 위태하다. 차들의 왕래는 멎을 새 없으나, 길들의 풍경은 인적이 끊긴 양 늘 삭막하다. 삶의 여정을 은유하는 레토릭으로 삼기에, 길이라는 낱말은 이제 너무 버겁다.오륙 년 전부터 전혀 다른 길이 생겨났다. 차를 피해 가로 다니지 않고 당당히 가운데로 걷는 길이다. 올레니 둘레길이니 살가운 이름이 붙은 이 길은, 뚝딱 새로 뚫은 길이 아니라 선조들이 논 매러 가고 마실 다니고 쌀과 소금 팔러 넘었던 바로 그 길이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근 일백 년 만에 되찾은 걷는 기쁨 때문인지, 한 해 수십 만의 여행객이 그 길 위에 선다. 즐거운 마음 한 편, 이런 의문이 들었다.'이런 길을 닦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지난달 28일 전남 해남군 땅끝으로 삼남길 개척단을 찾아갔다. 서울에서 출발해 차로 일곱 시간 걸렸다. 삼남길 개척은 이 길을, 거꾸로 올라가며 서울을 지나 내처 임진강까지 해변길 숲길 마을길로 잇는 작업이다. 직선 거리로 재면 400km 정도. 하지만 마을과 산자락을 넉넉히 품고 아스팔트를 피해가는 이 길은 약 600km에 이른다. 완성되면 해남, 강진, 영암, 나주, 광주, 장성, 정읍, 완주, 익산, 논산, 공주, 천안, 평택, 수원, 남태령, 서울을 연결하는 국내 최장의 도보여행 코스가 된다. 현재 나주까지 개척을 완료했고, 해남 구간(1~4코스 총 56.7km)과 강진 구간(5~8코스 총 58.6km)은 개통됐다.

"사장님 나빠요. 밥 줘요, 밥!" "왜 그래? 아까 고기 먹었잖아!"

서른 여덟에서 마흔 한 살까지 네 명으로 구성된 개척단은 MT 온 대학생들처럼 유쾌한 분위기였다. 사단법인 아름다운도보여행을 꾸려가는 손성일(40ㆍ대표) 강세훈(40) 강주미(41) 이충렬(38)씨다. 손씨는 2008년부터 삼남길 개척을 시작했고 막내 이씨는 지난 3월 합류했다. 각각 만만찮은 사회 경력과 사연을 지닌 이들이다. 하지만 등산화 신고 자외선차단제 바르고 워키토키 꽂고 낫을 든 현재, 이들의 직업은 애오라지 '걷기'다. 개척단은 7월 중순까지 나주 구간 개척을 마치고 해남에서 보수 작업 중이었다. 폭우가 계속된 중부 지방과 달리 땅끝에선 해가 이글거렸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자기 블로그에 '8월 초에 삼남길 간다'고 쓴 걸 봤어요. 그래서 다시 내려왔죠. 아직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숲을 통과하는 부분에 잡초가 많거든요. 이대로 걸으면 풀잎에 벨 수도 있어요. 지금은 단 한 사람을 위한 보수 작업이지만 머지않아 만 명, 십만 명이 이 길을 걷게 될 거에요."(손씨)

낫을 들고 팥죽땀을 흘리는 개척단은 영락없이 제초작업에 동원된 이등병 꼴이다. 이날 보수한 구간은 해남구간 1코스 시작점 땅끝마을부터 2코스 4분의 1 지점인 영전백화점(이름과 달리 동네 구판장이다)까지. 대원들이 손씨를 '사장님'이라 부르며 애교 섞인 불평을 늘어놓은 지점은 1코스 마지막 부분인 통호리 언덕길이다. 30~40년 전까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걷던 통학로였다는데 마을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된 지금은 잡초가 무성하다. 점심을 먹은 지 두어 시간밖에 안 됐지만 힘든 낫질에 개척단은 허기져 보였다.

"저 사람, 걷는 것에 미친 사람이에요. 대단해요 정말. 하루 종일 죽도록 걷고 홱 쓰러졌다가도 새벽이면 발딱 일어나요.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냐고 물으면 '나, 걷고 싶다. 저기 안 가본 길이 있잖아' 그래요."

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세훈씨의 '사장님'에 대한 평가다. 하지만 걷는 것에 미치기는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들은 1년 365일 중에 250일 가량을 걷는다. 거리로 치면 3,000~4,000km. 그러자면 자연히 다른 일을 하기 힘들다. 코오롱스포츠가 개척 비용과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 주지만 마흔 살 언저리의 이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낮에 손씨가 "우리 가운데 둘은 걸어 다니려고 집을 내놨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저녁 술자리에서 그 말이 진짜란 걸 알았다. 그래도 이들은 무척 쾌활했다.

"전에 하던 일도 보람은 있었어요. 하지만 재미가 없었죠. 내가 바라는 인생이 이거였던 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코오롱에서 주최하는 삼남길 개척 이벤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옛날부터 걷는 데 매력을 느끼고 있었는데…"(이씨) "야, 너 저번에 나한테 '20만원짜리 트레킹화 준다고 해서 참가신청했다'고 이실직고했어."(손씨) "사장님, 정말 나빠요."(이씨)

이튿날 개척단의 보수작업은 갯벌과 파도 너머 멀리 완도의 모습을 바라보는 해안길에서 진행됐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농로와 바닷가 자갈길을 이어 이 절묘한 '걷는 맛'을 찾아낸 비결이 궁금했다. 혹시 어디 옛 기록에 이 길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손씨의 설명은 이랬다.

"걷기 좋은 길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시작점과 종착점을 잇는 루트를 최소한 열 개, 스무 개는 답사해야 해요. 어떤 구간은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아도 걷고 또 걷다 보면 결국 길을 발견하게 돼요. 한 번은 녹초가 돼서 포기하고 있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전에 보건소 댕기던 길인데…' 하고 숨어 있던 길을 찾아주신 적도 있죠."

삼남길 개척단과 함께 걸어본 남도의 옛길은 평화롭고 푸르렀다. 임도마저 사라져 주민들도 존재를 모르던 삼나무 숲, 옛날 선인들이 유배길에 마음을 달래던 해변이 그 길에 꿰어져 있었다. 개척단은 2015년 삼남길을 닦는 일을 마무리할 계획이라 했다. 그때면 스페인의 저 유명한 산티아고 가는 순례길처럼, 이 땅에서도 아스팔트를 벗어나 길고 긴 도보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삼남길 개척이 끝나면요? 우린 환갑 때까진 계속 새로운 길을 만들고, 환갑 이후에는 그 길들을 걸으며 여생을 보낼 거예요. 아, 그런데 통일이 되면 환갑 지나서도 할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걱정이긴 하네요. 하하."

삼남길이란

영조 46년(1770) 홍봉한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문헌비고>에는 조선 9대 간선도로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삼남대로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서울에서 삼례, 전주, 태인, 정읍, 나주, 강진을 거쳐 해남의 이진항에서 제주에 이르는 도로.' 아름다운도보여행이 개척 중인 삼남길은 이 삼남대로를 기본으로 하지만 구체적인 코스는 상당히 다르다. 삼남대로의 대부분이 일제 시대 신작로로 닦인 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국도와 지방도가 됐기 때문이다.

손성일 대표는 "본래 삼남대로가 지나는 시ㆍ군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코스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보여행 코스 삼남길은 이를 테면 '퓨전 삼남대로'인 셈. 전체 구간의 절반 이상을 숲길과 마을길로 만드는 게 목표다. 손 대표는 "북으로 갈수록 도시화가 심해 평택 이북 구간은 상당부분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없던 길을 새로 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개통된 해남 구간과 강진 구간은 바다와 산과 논밭, 전라도 지방 옛마을의 분위기를 두루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사라져가는 마을 당집, 삼나무와 편백나무 삼림욕 코스,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초가, 시인 김영랑 생가, 월출산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누릿재 등을 거쳐간다. 자세한 정보는 아름다운도보여행 홈페이지( www.beautifulwalking.net)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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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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