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매운 맛'의 정의를 보여주마!

2009. 7. 3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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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나영준 기자]

아귀찜과 어우러지는 곁반찬은 왠만한 한정식집의 맛을 뛰어넘는다.

ⓒ 나영준

맛있게 맵다는 건 어떤 맛일까?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 맛을 정의한다는 것은 힘들다. '맵다'는 단어 자체가 맛이 아닌, 통증에 해당하는 표현이기에 음식 맛이 좋다는 뜻의 '맛있다'라는 단어와 덧붙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현대인들은 '맛나게 매운' 음식을 찾아 거리를 누빈다. 이에 상인들은 불닭이나 불갈비 등의 메뉴에 '매운'이란 수식어를 더해 보다 자극적인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이처럼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를, 혹자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심리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경제 불황, 과중한 업무에 대한 시달림, 인간관계, 남녀관계 등등…. 세상살이에 있어 고민거리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들을 화끈한 음식을 통해 풀고 싶어 하는 것은 한편 수긍이 가는 이유다. 하지만 단순히 맵기만 해서는 안 될 일. 맛나게 매운 맛을 손끝으로 표현해 낸 집을 찾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손님이 원하는 부위와 맛에 따라, 맞춤형 아귀찜

경기도 파주시, 파주 등기소 앞 작은 골목. '금촌 아구탕'이라는 빛바랜 상호 아래 지하식당으로 손님들이 종종걸음을 한다. 근방에선 알만한 집. 쾌적한 현대식 건물로 옮길 법도 하지만, 이곳은 다소 낡은 건물 지하를 고집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지난 89년에 처음 문을 연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맛있게 매운' 아귀찜. 이 곳에서는 큰 덩어리로 상에 나온 후 솜씨좋게 뼈를 발라내 준다.

ⓒ 나영준

녹록지 않은 세월, 음식 맛도 그 기간에 필적해야만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을 터. 이곳의 메뉴는 아귀찜과 아귀탕. 사실상 단일메뉴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아귀찜을 선택한다. 그런데 아귀찜의 맛과 재료는 조금씩 다르다.

"손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죠. 아주 매운 맛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그에 걸맞게. 또 살코기·껍질·뼈다귀·꼬리 등 선호하는 부분만을 해 드리기도 하고요."

바로 맞춤형이다. 손님의 기호와 입맛에 맞게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같은 메뉴이지만 각기 색다른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음식을 맛볼 차례.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이 산뜻하다. 이어 쫄깃하고 부드러운 아귀의 싱싱함이 입 안으로 녹아든다.

강렬한 자극이 아닌, 은은하게 매운 맛의 아귀찜

"아귀는 심장에도 좋고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죠. 또 우리 가게에서 쓰는 아귀는 절대 비린내가 나지 않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믿을 수 있는 한 가게에서만 20년을 받아쓰고 있거든요."

주인 양경자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비릿하거나 질긴 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재료는… 입을 속일수가 없다. 또한 입에 넣는 순간 불을 댕긴 듯 확 매운 맛이 몰려오지 않는다. 잠시 후 은은하고 얼큰한 향이 올라온다.

젊은 여성들도 매운 맛을 선호한다는 시대. 오로지 강렬한 자극을 내기위해 경쟁이 붙은 듯한 세태는 다소 씁쓸하다. 재료 특유의 맛은 사라지고 그저 입천장에 불이라도 난듯해야 제대로 된 매운 맛을 즐겼다고 여기는 이들. 때문에 중국·베트남·남미의 고추를 온통 섞어 쓰다 보니 보통 사람은 입에 대기도 힘든 음식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의 고춧가루와 마늘은 주인 양경자씨의 고향인 전남 해남 것만을 고집하기에 뒷맛이 산뜻하다. '징허게' 맵게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원 재료의 맛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다. 곁들여진 미더덕 역시 갓 잡아 올린 듯 입안에서 먼 바다향이 툭툭 터진다.

곁다리 음식이라기엔, 너무도 깊은 맛의 남도반찬들

부드럽고 아삭한 장아찌, 비리지 않은 토하젓과 창난젓, 마지막 방점은 신선한 생김에 싸먹는 볶음밥이 찍는다.

ⓒ 나영준

맛나게 음식을 먹는 사이 미역국·창난젓·토하젓·김치·오이지·장아찌 등의 곁다리 음식들이 상을 채운다. 별 생각 없이 집었다가 예사 맛이 아닌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압권은 토하젓과 창난젓. 토하젓의 경우 특유의 흙내음이 있어 냄새조차 맡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 사실.

그런데 이곳의 그것은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고소하다. 비결은 찹쌀을 끓여 넣었다고 한다. 이것을 아귀탕에 풀어먹으면 더 이상의 해장국이 필요 없을 정도. 창란젓 또한 재료가 되는 명태의 창자가 귀하기에 비싸고 쉽게 먹기 힘든 음식. 직접 무쳐낸 맛이 백화점 등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거기에 몇 번씩 간장을 다려부었다는 장아찌는 양파·무·마늘 등의 재료가 부드럽고 동시에 아삭거린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비빔밥이다. 김치와 함께 볶아 낸 윤기가 자르르한 비빔밥이 등장하고, 생김이 그 옆에 자리한다. 흔히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조미 김을 내놓아도 되지만 질 좋은 남도 생김에 싸먹어야 맛이 배가된다고 한다. 따로 김을 구입하는 비용만 한 달 40여 만 원 가까이 든다고 하니 그 맛은…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맛이 변하지 않는 집은 손님들이 알아본다. 일산, 서울 등지에서 오랜 된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마음씨 넉넉한 주인은 젓갈과 맛나다는 반찬을 싸주며 감사를 표한다. 물론 단골이거나 아주머니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칭찬에 기분 나쁠 사람 있을까. 음식 칭찬과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권한다면, 매운 닭발· 닭발묵 등의 특별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물론 늘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나눠주기 좋아하는 분이기에 그 확률은 낮지 않다.

가게 한 귀퉁이엔 지난 9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고 원희석 시인의 < 金村 아구탕집 > 이라는 싯귀가 걸려있다. 삶을 시로, 시로 삶을 산 그가 남긴 이야기가 주린 배를 채워도 어쩔 수 없던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고 있었다.

봄비가 주절주절 아구수염같이 내리고 있었다 입이 아구처럼 큰 재훈이와 아구탕을 먹었다 아귀 같은 세상의 지붕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구 같은 인간들이 아구탕을 먹으며 세상의 입과 입 귀와 귀를 물어뜯고 있었다 가시 돋힌 세상의 뼈와 뼈 사이로 더러운 혀를 내밀고 있었다 (중략)… 우리들이 지나간 뒷골목 사이로 스님을 닮은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뼈 없는 짐승처럼 물렁뼈까지 씹어 먹는 아구 없는 아귀들처럼 세상의 별빛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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